견자단의 영화로 유명해진 엽문은 1949년에 홍콩으로 이주하면서 홍콩에 영춘권을 들여 온 실존 인물입니다.엽문 시조는 홍콩 요식업 노동조합에서 지내면서 영춘권을 가르쳤습니다. 엽문 시조와 서상전 노사는 중국 본토에서 단신으로 홍콩에 왔기에 서로가 의지하면서 지낼 수도 있고 수련하기에도 편하도록 서상전 노사가 노동조합으로 이사하여 5년간을 같이 지냈습니다. 물론 두 분은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서상전 노사는 엽문 시조의 도장에서 14년 동안 수련했으며 도장의 수석 사범으로 있으면서 어떤 날은 하루에 12시간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엽문 시조는 홍콩 요식업 노동조합에서 지내면서 영춘권을 가르쳤습니다. 엽문 시조와 서상전 노사는 둘다 중국 본토에서 단신으로 홍콩에 왔기에 서로가 의지하면서 지낼 수도 있고 수련하기에도 편하도록 서상전 노사가 노동조합으로 이사 하여 5년간을 같이 살았습니다. 물론 두 분은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초기 수년간은 영춘권의 첫 번째 투로이자 영춘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소념두를 연습하는데 집중을 하였습니다. 엽문 시조께서 “소념두를 제대로 알고 나면 그 후 하게 될 다른 수련들이 잘 이해되고 잘 할 수 있게 된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엽문 시조는 서상전 노사가 소념두를 꾸준히 연하마여 탄탄한 기초를 다졌기에 그를“소념두의 왕”이고 칭했습니다.
서상전 노사는 1964년 홍콩에 자신의 도장을 열었고 82세로 타계할 때까지 쉬지 않고 영춘권을 가르쳤습니다. 그가 남긴 저서에서 “영춘권은 수십년 동안을 해도 끝나지 않는 나의 학문이다. 영춘권에 대한 관심은 지금까지도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나의 인생 전체가 영춘권에 사로잡혀있었지만 나는 조금의 후회도 없다.”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