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s Finest 大韩民国名品
Since 1987 대한민국명품

康津耽津青瓷

보도자료

[보도자료] 2016.08월호 / Power Korea / 천년의 빛을 청자에 담다 "전통과 현대의 접목, 강진청자…

페이지 정보

작성자 강진탐진청자 작성일17-05-03 22:55 조회523회 댓글0건

본문

천년의 빛을 청자에 담다
“전통과 현대의 접목, 강진청자의 대중화 이끌 것”

▲ 청자커피메이커세트
천년의 빛을 청자에 담다
“전통과 현대의 접목, 강진청자의 대중화 이끌 것”
강진탐진청자 김보미 도예작가
고려청자는 섬세하고 감각적인 조형의 결정체다. 표면을 이루는 유려한 곡선과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아름다운 비색(翡色), 상감기법으로 표현해낸 다채로운 무늬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중국 북송의 유명한 문장가이자 시인이었던 소동파는 고려청자를 천하명품 10가지 중 하나로 꼽았으며, 한국미술사학의 태두라 불리는 우현(又玄) 고유섭 선생은 “청자는 유구한 정적(靜寂)을 동경하는 고려인들의 ‘파란 꽃’과 같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이번호 <월간 파워코리아>에서는 오랜 역사를 가진 고려청자의 전통을 계승하는 동시에 현대적 감각과의 접목을 시도하며 대중화와 세계화에 힘쓰고 있는 강진탐진청자 김보미 도예작가를 만나봤다.

형식에서 벗어나 진정한 ‘美’를 찾다
도자기는 흙과 불, 그리고 사람이 하나가 되어 만드는 예술이다. 좋은 흙을 골라내 적절한 비율로 배합하고, 이에 갖가지 문양을 넣어 성형한 뒤 유약을 발라 1300도에 달하는 뜨거운 가마 안에서 오랜 시간을 구워내야만 우리만의 고유한 빛깔과 아름다움을 가진 청자가 탄생한다. 이렇게 완성된 고려청자는 인삼과 함께 활발한 대외무역 활동을 전개했던 고려의 주요 수출품 중 하나였으며, 세계에 ‘KOREA’의 이름을 알린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오늘날에도 고려청자는 전 세계 곳곳에서 우리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그리고 그 최전선에 서게 될 차세대 작가로 주목받고 있는 인물이 바로 강진탐진청자의 김보미 도예작가이다. 김보미 작가는 지난 4월말 열린 장작가마 작품전 <美완성>을 통해 기존의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현대적이며, 독특한 조형미를 갖춘 작품들을 선보이며 큰 호응을 받기도 했다. 물레성형에서의 자연스러움을 최대한 표현해 내고자 의도적으로 병 입구를 찌그러트리거나, 유약을 두 번 바르는 기법인 ‘이중시유’를 통해 번조 과정에서의 예측할 수 없는 유색변이를 구현해내기도 했다. 틀에 박힌 아름다움이 아닌, 저마다의 다른 형태와 색상을 가진 이형의 작품들 속에서 진정한 ‘美’를 찾고자 한 것이다. 그의 이러한 탐구정신과 도전정신은 장르를 넘나드는 폭넓은 작품 활동에서도 잘 드러난다. 김 작가는 ‘청자 커피 핸드드립 세트’, ‘웰빙 테이블웨어 세트’와 같이 청자를 좀 더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청자 생활용품을 제작하기도 했으며,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대한민국 청자공모전 특상(2011), 대한민국 청자공모전 디자인 부문 최우수상(2013), 전라남도 대한민국 공예품대전 대상(2013), 대한민국 공예품대전 금상(2014), 제45회 대한민국공예품대전 국무총리상(2015)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전통이라는 땅 위에 피어난 ‘독창성’
김보미 작가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는 탄탄한 전통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이는 김 작가의 부친이자, 지난 37여 년간 강진청자의 아름다움을 재현하고자 노력해 온 ‘강진청자 명인 제1호’, ‘전남 공예명장 제3호’ 김경진 명인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전남 강진은 고려청자의 최고 전성기였던 11~12세기, 188개 이상의 가마가 운영되던 대표적인 고려청자 생산지였다. 특히 적당량의 산화철이 함유된 질 좋은 고령토와 규석이 산출되어 이곳에서 빚은 청자는 고려왕실과 중국 수출용의 ‘특등품’으로 취급되기도 했다. 그러나 13세기에 들어오면서 외세의 잦은 침략, 어려워진 나라 살림으로 인해 고려청자는 침체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고려의 쇠망과 함께 지난 600여 년간 그 명맥이 끊어지다시피 했다. 이처럼 단절됐던 강진청자의 전통을 되살리고, 그 명성을 다시금 세계에 알리고 있는 인물이 바로 김경진 명인이다.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약관의 나이에 도예에 입문, 1986년 청자기능보유자인 고현 조기정 선생의 문하로 들어가 강진청자의 전통 제작기법을 전수받은 김경진 명인은 이후 오랜 세월동안 강진청자가 가진 독특한 비색을 완벽하게 재현하고자 노력해왔다. 또한 광주전남공예협동조합, 강진청자협동조합 이사장 등을 역임하고, 호남대학교, 전남도립대학 등에 출강하며 후진을 양성하는 일에도 힘을 쏟아왔다. 김 명인의 둘째 딸로 태어난 김보미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레 흙을 만지며 자라게 되었고, 현재는 ‘강진탐진청자’의 공동대표로서 부모님과 함께 강진청자의 산업화와 대중화를 열정적으로 이끌고 있다.

김 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늘 청자를 생활처럼 대하다보니 생각의 폭이 넓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기존과는 다른, 독창적인 기법이나 형식을 섞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에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됐죠. 물론 그 과정에서 전통을 중시하는 아버지와 충돌하기도 했어요”라고 말했다. 사실 김 작가가 시도했던 커피 그라인더와 같은 제품은 김경진 명인에게 있어 충격이자 걱정스러운 부분이었다고 한다. ‘새로움’에만 빠져들다가 자칫 ‘전통’을 소홀히 하게 되진 않을까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 작가의 작품이 세간의 인정을 받게 되고, 현대적인 시도로서 높게 평가되자 조금은 마음을 열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김보미 작가는 금속공예나 나전기법 등을 청자에 접목하기 위한 연구와 시도를 계속해오고 있다. 한결같은 장인정신을 가진 아버지가 물려준 전통 위에 자기 나름의 길을 새롭게 개척하고 있는 그다.

강진청자의 도약, 세계를 향하다
오늘날 고려청자는 전 세계 곳곳에서 우리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 특히 주목받는 것은 우리의 고려청자가 서양의 도자기와는 달리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김보미 작가는 “1300도의 고온으로 구워내는 청자는 아름다움은 물론이고, 잘 깨지지 않는 견고함과 세균의 번식을 차단하는 살균 능력, 몸에 좋은 원적외선과 음이온이 방출되는 특성까지 가지고 있어요. 유리관을 씌워놓고 멀리서 감상하는 것보다 우리 생활 가까이에 두고 활용하는 것이 더 훌륭한 활용법이라 생각해요”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우리 선조들은 청자를 보관용기 또는 생활식기, 차도구, 향로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했으며, 현재 출토되는 흔적들은 청자의 생활화가 광범위하게 퍼져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김보미 작가는 강진청자의 현대화·실용화를 위해 반상기부터 1인용 식기, 텀블러나 마사지기, 조명등과 같은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그는 “청자를 대중화하고 실용화하기까지는 아직 넘어야할 산이 많아요. 숙련된 기술과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제작과정 탓에 가격을 낮출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죠”라며, “청자를 대중화하기 위한 여러 방법을 생각해보고 있어요.  사용하는데 있어서 너무 무겁지 않고 고루하지 않으면서 친근한, 예쁘면서도 실용적인 친환경 청자를 만들어전세계의 식탁 위에 올리는 것이 제 목표이자 꿈입니다”라고 밝혔다. 이에 덧붙여 향후 아버지의 60세 생신에 맞춰 가족전시회를 열어보고 싶다는 딸다운 바람도 전했다.

김보미 작가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에게도 강진청자의 아름다움을 알리고자 국제 박람회와 국제 문화교류행사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또한 강진탐진청자는 다양한 인증을 획득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명품으로 그 이름을 높여가고 있다. 과거 고려청자가 세계에 우리의 이름을 알렸듯, 강진청자를 통해 다시금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문화예술을 선보이고자 하는 이들의 노력이 보다 큰 결실로 열매 맺게 되기를 바란다.

 


▲ 강진탐진청자 김보미 도예작가
The celadon that kept a thousand year old light
From traditional Gangjin Celadon to contemporary Gangjin Celadon
Celadon potter Kim Bo-mi of Gangjin Tamjin Celadon

Breaking the mould to create unique beauty
A celadon is born by the right clay, fire and passion of the potter. A potter has to go through meticulous process like choosing good clay, mixing it in an appropriate ratio, putting patterns and glaze on the surface and burning it at 1,300°C in order to create a unique celadon. Thanks to its heavenly color and beauty, Goryeo Celadon, and of course Goryeo Ginseng, was the most representative contributor to spreading the name ‘Korea’ (Korea comes from the Kingdom of Goryeo aka Korean Dynasty: 918-1392) to the world. Celadon is still highly sought-after especially among collectors and it is worth the effort to point out a celadon potter Kim Bo-mi of Gangjin Tamjin Celadon as one of the most promising celadon potters today. In her recent exhibition called <美완성> - Beautiful Finish - held last April, Kim demonstrated her great technique by breaking the mould but applying modern sense of beauty to her celadon. She deliberately crushed the neck of a vase or teapot or putting glaze twice on the surface to give contemporary edge to each of her works. ‘Celadon Coffee Hand Drip Set’ and ‘Wellbeing Tableware Set’, for this reason, are praised by many for their practicality. Today, her works are widely recognized by winning a special prize at the Korea Celadon Competition in 2011, the grand prize at the Korea Celadon Competition in the design category in 2013, the grand prize at the Korea South Jeolla Province Handicraft Competition in 2013, a gold prize at the Korea Handicraft Competition in 2014 and the prime ministerial prize at the 45th Korea Handicraft Competition.

The uniqueness born from the land of tradition
It is not surprising that Kim’s talent and uniqueness come from her family business. Her father Kim Gyeong-jin is the first master Gangjin Celadon potter and the third master craftman of South Jeolla Province whose devotion to celadon making has lasted over 37 years. Gangjin County was the center of Goryeo Celadon around the 11 to 12 centuries, the golden age of Goryeo Celadon, and the county ran more than 188 kilns thanks to the abundant china clay and quartzite in the area. Gangjin Celadon, for this reason, received a special treat from the royal family and the neighboring countries. The celadon then went downturn due to the frequent invasions from Japan around the 13 century and the collapse of The Kingdom of Goryeo almost cut off the tradition of celadon making for the next 600 years. Despite his family’s disapproval, Kim Gyeong-jin firmly decided to succeed the tradition and learned the technique from Jo Ki-jeong, a master celadon potter, from 1986. Kim served as the chairman of Gwangju Jeonnam Crafts Cooperative Association and Gangjin Celadon Cooperative Association and taught students at Honam University and Jeonnam Provincial College. Naturally, Kim Bo-mi grew up under her father’s influence and is now leading Gangjin Tamjin Celadon as co-CEO alongside his father.. “I spent my childhood surrounded by celadon. It was part of my life. Then I started grow my own ideas and applied them to my celadon and it often caused a stir between me and my father who values tradition more than trying something new” says Kim. Her father worried that she might lose the traditional value and beauty of Gangjin Celadon but gradually recognized as her works received a great respond from both critics and the public.

Gangjin Celadon to go to the world with practicality
The beauty of Goryeo Celadon has long been praised by many people in the world. With this recognition as the foundation, Kim Bo-mi is exerting her utmost effort in spreading Gangjin Celadon to the world with her practicality. “Apart from its unique beauty, celadon functions to prevent proliferation of germs and to release far-infrared radiation and anion. It is good to appreciate a celadon in a glass case but equally pleased is to use it in our daily life” says Kim. In fact, we can find a trace that our ancestors used celadon in daily life for tableware, tea set and incense burner. As a modern woman, Kim is applying it to tumblers, massagers and lighting devices. “It will take some time to commercialize celadon products due to the expensive production cost. Yet I can make it possible if it is light, pretty and practical” says Kim. As part of the effort, Kim is actively participating in various exhibitions and fairs home and abroad. When asked about future plan, Kim said that she would like to hold a family exhibition on the occasion of her father’s 60th birthday. <Power Korea> sends a message of support.

 

将千年之光盛于青瓷
“结合了传统和现代,将引领康津青瓷走向大众化”
康津耽津青瓷金甫美陶艺家

高丽青瓷是精致且感性之造型的结晶。构成表面的流丽的曲线、任何人都无法模仿的美丽的翡色和以象嵌技法表现出的多彩的纹理,不禁让人感叹。中国北宋有名的文学家兼诗人——苏东坡曾将高丽青瓷列为十大天下名品之一,被称之为韩国美术史学之泰斗的又玄高裕燮也曾比喻 “青瓷犹如憧憬悠久静寂的高丽人之‘蓝色的花’”。 本期《Powerkoream》的人物就是继承了具有悠久历史的高丽青瓷的传统的同时,试图将其结合于现代感觉,且致力于大众化和全球化的康津耽津青瓷金甫美陶艺家。

脱离于形式,寻找真正的‘美’
陶瓷是泥土和火,还有人融为一体制作出的艺术。只有选择上好的泥土,以适当的比率混合,画上各种纹样成型后涂上釉药,再在达到130度的高温中长时间烤,才可以使拥有韩国固有色彩和美的青瓷得以诞生。这样完成的高丽青瓷与人参一起是当时正展开活跃的对外贸易的高丽主要出口物品之一,也是向世界宣扬‘KOREA’这个名字的一等功臣。

今天,高丽青瓷仍在世界各地炫耀着韩国传统文化之美。而康津耽津青瓷金甫美陶艺家被视为将站在其最前线的下一代陶艺家。金甫美陶艺家通过4月份的柴窑作品展——《美完成》,因展示出脱离了标准化的模板,具备了现代化且独特造型美的作品而赢得了广泛的响应。为使在拉坯成型最大限度的表现出自然,故意压瘪瓶口,或通过涂抹两次釉药的‘双重施釉’技法体现出燔造过程中无法预料的釉色变异。也就是为了在具备各自的形态和颜色的异形作品中寻找真正的‘美’,而不是框式的美。她的这种探究精神和挑战精神在不限体裁的作品活动中也可显而易见。金甫美陶艺家制作过可以进一步活用青瓷的多样的青瓷生活用品,诸如‘青瓷手冲咖啡套装’、‘健康餐具套装’,也通过此类作品获得了大韩民国青瓷征集展特别奖(2011)、大韩民国青瓷征集展设计领域最优秀奖(2013)、全罗南道大韩民国工艺品大战大奖(2013)、大韩民国工艺品大战金奖(2014)、第45届大韩民国工艺品大战国务总理奖(2015)等。

在传统之地绽放出的‘独创性’
金甫美陶艺家独创的作品世界以牢固的传统为基础,此点更为引人注目。这也是因为受到了金甫美陶艺家的父亲——在过去的37年来,一直致力于再现康津青瓷之美的‘康津青瓷名人第一号’、‘全南工艺名将第三号’ ——김경진名人的影响。

全南康津在高丽青瓷的最高全盛期——11~12世纪运营过188个以上的窑,是个具有代表性的高丽青瓷生产地。这里产出含有适量氧化铁的高品质高岭土和硅石,因此在这里做出的瓷器曾被视为向高丽王室进贡和出口到中国的‘特等品’。但是,进入13世纪后,因外部势力频繁的侵略和贫困的国家经济,高丽青瓷从而也陷入了沉滞期,且随着高丽的衰亡,在过去的600多年,也几乎断了其命脉。恢复了康津青瓷的传统,向世界传扬其名声的人物正是김경진名人。金庆镇名人冒着家人的反对,在弱冠之年入门陶艺,1986年进入青瓷技能拥有者古咸曹基正先生的门下,传授了康津青瓷的传统制作技法,此后常年为了完美地再现康津青瓷独特的翡色而努力。金庆镇名人历任过光州全南工艺合作社、康津青瓷合作社的理事长,且在湖南大学、全南道立大学等授课,致力于培养晚辈。金甫美陶艺家是金庆镇名人的二女,从小自然而然地玩耍着泥土长大,现为‘康津耽津青瓷’的共同代表,与父母一起热情地引领者康津青瓷的产业化和大众化。

金甫美陶艺家说:“我的想象力之所以这么广泛,这都可能是因为我从小与青瓷为伴。我想如果融入有别于现有的独创的技法和形式会怎么样呢,出于这种想法我试过各种方法。当然,在这过程,也曾与重视传统的父亲有过冲突。”事实上,由金甫美陶艺家试图制作的,诸如咖啡粉碎机的作品,对于김경진名人来说既是冲击也是担心的部分。他担心她会不会因陷入‘新颖’而疏忽‘传统’。但是,随金甫美陶艺家的作品被世间认可,也作为现代式的试图而被高度评价,这才让他敞开心怀。现在,金甫美陶艺家正在进行将金属工艺和螺钿工艺等融入于青瓷的研究。以具备一如既往的匠人精神的父亲传授给她的传统为基础,金甫美陶艺家正在开拓自己的领域。

康津青瓷的飞跃,走向世界。
今天,高丽青瓷在世界各地炫耀着韩国传统文化之美。特别受瞩目的是,韩国的高丽青瓷与西洋的陶瓷不同,它同时具备了美和实用性。 金甫美陶艺家讲,“在1300度的高温烤出来的青瓷不仅美,而且还具备了不易碎的坚固、隔离细菌繁殖的杀菌能力和放射对人体有益的远红外线和负离子。与其给它盖上玻璃罩在远处观赏,不如将它置于我们的生活中活用。”实际上,我们的祖先也是将青瓷用为保管容器、生活餐具或者茶道具、香炉等各种用途,而现在出土的痕迹都证明着青瓷曾广泛传播于生活。 为了康津青瓷的现代化和实用化,金甫美陶艺家一直试图制作从套餐器具到单人餐具、保温杯、按摩器、照明等。她说:“将青瓷大众化和实用化还得挺过很多坎坷。因其制作过程需要熟练的技术和很长的时间,所以不能降低价格,这也是最大的绊脚石”还说:“我正在为青瓷的大众化琢磨各种方法。我的目标是将使用时不太重、不古板、亲切、美丽又实用的环保青瓷摆上全世界的餐桌,这也是我的梦想。”她还说想在父亲的60大寿时举办家族展示会。

金甫美陶艺家为了将康津青瓷之美传播于世界,积极地参加国际博览会和国际文化交流等。康津青瓷还获得了各种认证,以代表韩国的名品而扬声。犹如在过去高丽青瓷向世界宣扬韩国这个名字,他们试图通过康津青瓷再一次宣扬韩国之美丽的文化艺术,希望这种努力能够结出更佳丰盛的果实。


정재헌 기자  jjh05220@naver.co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